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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권의 역사이야기
우리 여권의 역사 아래에 설명 있습니다.

우리여권의 역사

PASSPORT HISTORY

1961 : 여권법 제정, 법 제정후 '여권'이라는 명칭을 일관되게 사용하기 시작

1983 : 여권발급업무 전산화 구축 및 전국 on-line 망 구축, 부산,대구, 경남, 전북, 충남, 충복, 강원, 제주도청 여권업무 위임

1988 : 해외 여행 전면 자유화, ICAO Doc 9303 국제 표준을 활용하여 여권 발급

1998 : 새 재질의 신여권 발급 시작

2004 : 전국 28개 여권사무 대행기관에서 여권 발급가능

2005 : 사진전사식 여권 발급 시작

2007 : 여권발급 중앙집중발급식 전환

2008 : 전자여권 발급 시작, 여권 본인직접신청제 도입, 국내 141개 여권사무대행기관 추가 신설

2010 : 여권 신청 시 지문대조를 통한 본인 확인 제도 실시

2014 : 24면 여권 발급 개시

2016 : 민원 24 생활정보 서비스 개시, 여권 만료일, 로마자 성명, 여권번호 안내

2017 :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여권 발급 개시, 거주여권 제도 폐지

2018 : 여권 유효기간 만료 사전알림 서비스 시행, 전국 249개 여권사무 대행기관 및 176개 재외공관에서 여권업무 수행

2020 : 온라인 여권 재발급 신청 서비스 시행

2021 : 차세대 전자여권 도입

    • 우리여권의 시작
      • 우리나라 여권의 역사는 서구적 의미에서 근대 국제 관계를 형성하기 시작한 19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오늘 날의 여권에 해당하는 집조는 조선 중앙 정부기관에서 개인을 대상으로 1887년 통리기무아문에서 최초로 발급되었다. 이 제1호 집조는 조선 정부가 민영준 특임 특권흠차변리대신을 일본에 파견하면서 발급한 것으로 성명, 직위, 목적지, 발급일자 등이 기재되어 있다.
    • 구한말 ~ 일제강점기
      구한말 집조의 모습
      • - 집조란?
      • 조선 말기에 발급된 여행문서의 명칭으로 『증명서』를 뜻한다. 초창기에는 모든 내용을 수기로 기재했으나, 이 후 목판인쇄술을 사용한 양식을 활용하여 대량으로
        발급하기 시작했다.
      구한말 외교관 이응 열사의 집조 (1901)
      구한말 외교관 이응 열사의 집조 (1901)
      구한말 외교관 이한응은 일제에 주권을 빼앗긴데 항거의 뜻으로 자결한 첫번째 순국열사이다. 주영 공사관 3등참서관(參書官)으로 영국에 파견되어 한국의 사정을 알리는데 노력하였다.
    • 해외 이민자들이 사용한 집조
      도산 안창호 선생이 샌프란시스코로 건너갈 때 사용한 집조 (1902)
      도산 안창호 선생이 샌프란시스코로 건너갈 때 사용한 집조 (1902)
      도산 안창호 선생은 1897년 독립협회 활동을 시작으로 외세의 침략으로부터 자주국력을 회복하기 위한 노력과 백성들을 계몽시키기 위한 활동을 계속하다가, 1902년 넓은 세상에서 더 많은 것을 배워야겠다는 의지로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건너갔다.
      도산 안창호 선생이 사용한 집조는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하여 대량으로 발급될 것을 염두에 두고 양식이 만들어졌다고 할 수 있다. 공식 사절이 아니라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문서인 만큼 명의인의 출신지와 보증인을 함께 기재해 명의인의 신원을 나름대로 검증하려고 한 점도 눈에 띈다.
      또한, 태극무늬와 무궁화무늬로 테두리를 만들어 문서의 품격 및 위·변조 방지에도 신경을 쓰기 시작한 것도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최초 하와이 이민자의 집조 (1902)
      최초 하와이 이민자의 집조 (1902)
      최초 이민자들은 낯선 땅에 가야한다는 두려움과 가족과의 생이별을 뒤로 한채 새로운 희망을 찾아 1902년 12월 22일 하와이로 향하는 최초의 범선 갤릭(Gaelic)호에 몸을 싣고 조국을 떠나, 1903년 1월 하와이 호놀룰루(Honolulu)항에 102명이 도착했다.
      평화로운 휴양지로만 알고 있는 하와이는 우리 민족의 숨겨진 애환이 깃든 곳이다.
      최초 멕시코 이민자의 집조 (1905)
      최초 멕시코 이민자의 집조 (1905)
      한인 천여 명이 멕시코를 향해 1905년 4월 초 인천항을 출항, 5월 중순에 멕시코 살리나 크루스(Salina Cruz) 항에 도착했다. 이들이 최종 도착한 곳은 선인장처럼 날카롭고 단단한 가시들이 솟은 에네켄 농장이었다. 멕시코 이민자 들을 가리키는 호칭이 된 '애니깽'은 스페인어 에네켄(Henequén)을 한국식으로 발음한 것으로 지금까지도 가슴 아픈 멕시코 이민을 상징하는 단어가 되었다. 이민자들이 사용한 이 집조는 글자 테두리의 인쇄방식이 이전 집조에 비해 정교해졌으며, 한자, 영어, 프랑스어로 표기되었다. 또한, 이전 집조와는 다르게 태극기를 정식 국기로 채택하여 집조 상단에 인쇄하기 시작했다.
    • 일제 강점기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발급한 김정극 선생의 여행권 (1920)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발급한 김정극 선생의 여행권 (1920)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군자금 모집을 담당했던 독립운동가 김정극 선생의 여행권 (김구 선생의 소장품)으로 현재 독립기념관에 소장 중이다.1920년 임시정부 수립 후 독자적으로 발급한 이 여행권의 특이한 점은 영어, 프랑스어, 러시아어 번역을 싣고 있다는 점이다. 영어와 프랑스어 번역은 집조나 일본여권도 싣고 있지만, 러시아어 번역을 함께 기재한 여행문서로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여행권이 유일하다.
      한편 전면을 살펴보면, 문서 가운데에 '대한민국 임시정부' 를 음영으로 표시하고 별도의 사진부착란을 두고 있지는 않지만 상단에 사진을 부착하고 문서와 함께 날인하여 신분증으로서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 1945년 광복 이후
      1945년 광복 이후 ~ 1960년
      • 1945년 광복 이후 대한민국 정부 수립까지는 3년의 시간을 더 기다려야 했다. 이 시기에는 미군정이 우리 국민을 대상으로 여권에 준하는 여행문서를 발급했다. 이때 발급된 여행증명서 일부가 아래와 같이 현존하고 있다.
      미군청 시대에 발급된 런던올림픽 참가자 황산웅 선수 (사이클부문)의 여행증명서 (1948)
      미군청 시대에 발급된 런던올림픽 참가자 황산웅 선수 (사이클부문)의 여행증명서 (1948)
      이 여행증명서는 책자형으로 제작되었으며, 한자, 영문, 한글이 혼용되고 있는 점을 제외하면 당시의 일반적인 여권과 유사하다. 다만, 미국 군대가 발급한 문서이면서 동시에 우리 국민을 대상으로 한 문서이므로 태극무늬 등은 없다. 본인확인을 위한 추가 수단으로서 오른손 엄지와 검지 지문을 사진 아래에 날인한 점이 당시 여행 문서로서는 매우 이례적이다.
      장면 박사에게 주어진 대한민국 외교관 여권 제1호 (1948)
      장면 박사에게 주어진 대한민국 외교관 여권 제1호 (1948)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출범 후, 1949년 외무부령으로 해외여권 규칙이 제정, 시행되기 전까지는 조선총독부령, 미군정령 등 기시행되었던 법령이 그대로 유지되었다.
      1940년대 말은 국제적으로 최신 인쇄 기술과 좋은 종이를 사용해 품질 좋은 여권 발급이 시작되는 시기였으나, 아직 대한민국 정부는 그럴 여력이 없었기 때문에 이전 집조, 여행권 등을 참고해 여권 발급을 시작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장면박사에게 발급한 유엔 파견 대한민국 특사 자격의 대한민국 최초 외교관 여권이다. 아직 여권이 제정되지 않아 대한제국 시대 여권 모형에다 한문과 영문으로 외무부 장관 장택상 명의로 발행되었다. 장면 수석대표의 여권은 UN 특사와 바티칸 특사로 파견한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 1961년 여권법 제정 이후 우리여권
      • 이전까지 해외여행권, 여행권, 여권 등 표현이 엄격한 구분 없이 사용되고 있었으나, 1961년 여권법이 제정, 공포된 이후 여권이라는 용어가 일관되게 사용 되었다. 당시 여권법령은 외무부장관에 의한 해외여행 추천제를 도입하고, 오로지 수출, 수입, 경제개발 관련 등 사유로 해외에 출국할 경우에만 추천서 제출을 면제해 주었다. 여행비용에 대해서 반드시 보증을 서게 하고, 외국 이주자를 대상으로 발급한 이민여권 소지자에 대해서는 외무부장관이 허가할 경우에만 일시 귀국을 허용하는 등 국민의 해외여행에 대해 중앙정부가 아주 엄격하게 통제한 것이 1961년 여권법령 체제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신원정보면이 2장으로 간소화된 여권 (1970)
      신원정보면이 2장으로 간소화된 여권 (1970)
      기존 4면이었던 신원정보면을 2면으로 간소화하여 필요한 정보를 한눈에 확인할 수 있게 변화하였다. 이 양식은 다소간의 조정을 거쳐 1988년까지 계속 사용된다.
    • 1988년 해외여행 자유화 시대의 도래
      • 해외여행 규제 완화를 향한 1980년대의 움직임은 1981년 여권법 시행령 개정에서 시작되었다. 외무부장관의 해외여행 추천제를 원칙적으로 폐지하고, 여권 발급에 있어서 단수여권 대신 복수여권 발급 원칙을 도입했으며, 일반여권 여행목적으로 '관광'을 추가했다. 관광 목적 일반여권 발급 대상은 최초에 50세 이상으로 규정하였지만, 1987년-1988년 중 45세, 40세, 그리고 다시 30세로 하향 조정하였다. 1988년 말 여권 발급상 여행종류 구분을 폐지함에 따라 해외 여행이 전면 자유화되었다.
      기계판독식 (Machine Readable) 여권 표준을 활용한 여권 (1988)
      기계판독식 (Machine Readable) 여권 표준을 활용한 여권 (1988)
      1980년 국제민간항공기구(ICAO)가 드디어 기계판독식(Machine Readable) 여권표준인 ICAO Doc 9303을 발표하면서, 우리나라도 이 표준을 활용한 여권 발급을 1988년에 시작한다. 우선 형태가 오늘날의 아담한 수첩 모양으로 바뀌었고, 신원정보면 또한 비슷한 모습으로 바뀌었다.
    • 1990년대 새로운 여권
      • 1992년에 여권발급대상자 소양교육제도가 폐지된 데 이어, 1994년에 귀국서약제가 폐지되었다. 또한, 1994년부터 여권발급 업무에 전산 시스템이 도입 되어 여권업무의 효율성이 높아졌다. 기계판독 영역의 표기가 국제 표준에 맞지 않았던 이전 여권을 기술적으로 보완한 여권이 비로소 발급되면서 여행문서 발급 100년 만에 드디어 국제 표준에 의한 여권 발급이 이루어졌다.
      신원정보면을 필름으로 감싼 사진부착식 여권
      신원정보면을 필름으로 감싼 사진부착식 여권
      여권법 시행령에도 ICAO Doc 9303 규격을 공식적으로 수용하여, 신원정보면 전체를 두텁게 필름으로 감싸 위·변조를 억제할 수 있는 새 재질의 여권을 발급하였다
    • 2000년대 여권의 발전된 모습
      • 2005년부터 여권 사진 교체 방지 등 보안을 강화하고 전자여권 발급 여건 조성을 위해 사진전사식 여권이 도입되었다. 2008년은 우리 여권 및 여권 제도의 보완성이 크게 강화된 한 해였다. 국제민간항공기구(ICAO) 권고에 따라 여권 내에 전자 칩과 안테나를 추가한 전자여권을 발급을 시작하였다. 또한, 본인직접신청제가 다시 도입되고, 2010년에는 여권 발급 신청 시 지문대조를 통한 본인 확인 제도가 실시되어 다른 사람 명의로 여권이 발급될 가능성이 크게 줄어들었다.
      사진전사식 여권 (2005)
      사진전사식 여권 (2005)
      전자여권 (2008)
      전자여권 (2008)
    • 2021년 이후
      차세대 전자여권 도입
      • 2021년에 도입한 '차세대 전자여권'은 기존 전자여권보다 색감이나 이미지가 풍부하다. 여권의 표지 이면은 한국의 상징적 이미지와 문양들이 다양한 크기의 점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를 통해 전통과 미래의 조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자 하였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유물들로 채워진 여권의 속지(사증면)에는 선사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선조의 삶과 지혜가 담긴 유구한 역사를 담아내고자 하였다. 또한, 종이 재질로 되어 있는 개인정보면을 폴리카보네이트(Polycarbonate) 재질로 변경하여 여권의 보안성을 강화하였다.
      차세대 전자여권 표지
      차세대 전자여권 표지
      좌측 하단에 점들로 구성된 태극 패턴을 무박 형압(엠보싱)으로 인쇄하고 우측 상단에는 금박으로 국장과 여권명을, 하단에 전자 여권 로고를 인쇄한다.
      구성 방법에 있어서는 태극 패턴을 입체감이 느껴지도록 배치하여 공간감과 함께 한국의 소리가 세계로 퍼져나가는 모습으로 디자인하였다.
      개인정보면
      개인정보면
      개인정보면은 공간감을 극대화하기 위해 태극의 원호형태를 사용하여 위아래의 공간을 크게 감싸도록 했다. 문자를 가장 많이 포함하는 쪽으로 배경에 한글자모도를 배치하여 한글의 기하학적 조형미가 느껴지도록 하였다. 또한, 여권번호 체계를 변경 (M12345678 → M123A4567)하고, 주민등록번호를 삭제하며, 월(月)표기방법을 변경하였다. (영문 → 한글/영문)
    • 사증면 소개
      • 선사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시대별 유물을 배경으로 한 사증면 디자인
        복수여권은 58면 또는 26면, 단수여권은 14면으로 사증면수 확대
        사증면수 확대로 기존 사증란 추가 제도 폐지
      사증면 소개 아래에 설명 있습니다.

      4면 : 화순 대곡리 청동기,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 / 5면 : 빗살무늬 토기

      6면 : 신라부부총 금귀걸이, 신라 금관총 금관 / 7면 : 신라 천마총 천마도

      8면 : 백제 무령왕 금제관식 / 9면 : 백제 금동대향로

      10면 : 백제 산수무늬 벽돌 / 11면 : 신라 기마인물형 명기

      12면 : 고구려 강서중묘 주작 / 13면 : 고구려 강서대묘 현무

      14면 : 경주 불국사 삼층석탑(석가탑) / 15면 : 경주 불국사 다보탑

      16면 : 청자 상감운학문 매병, 청자 투각칠보문뚜껑 향로 / 17면 : 분청사기 물고기 무늬 편병

      18면,19면 : 훈민정음(언해본)

      20면 : 천상열차분야지도,양구일부 / 21면 : 거북선

      22면 : 맹호도, 십장생도 병풍 중 일부(학) / 23면 : 김홍도(춤추는 아이)

      24면,25면 : 일월오봉도

      26면,27면 : 인왕제색도